2025.06.18 (수)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 '장밋빛 약속'인가 '미래의 짐'인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의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개발 지원 특별법 발의와 이에 대한 탈핵 단체들의 강력한 철회 요구는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SMR이 가진 양면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정부와 일부 정치권은 SMR을 탄소중립 달성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핵심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시민사회는 그 안전성, 경제성, 그리고 핵폐기물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SMR 옹호론자들은 SMR이 기존 대형 원전의 한계를 보완하는 '차세대 원자력 기술'임을 강조한다. 모듈화된 설계를 통해 건설 기간 단축, 비용 절감, 유연한 부지 선정이 가능하며, 피동형 안전 시스템(Passive Safety Systems) 도입으로 대형 사고 위험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이 없어 기후 변화 대응에 효과적이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안정적인 기저 전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들이 SMR 개발 및 지원에 적극적인 점도 SMR의 잠재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에서는 이러한 장점들이 '미검증된 약속'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SMR은 대부분 설계 단계이거나 초기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어 충분한 상업적 운영 경험이 전무하다. 이론적인 안전성 강화는 실제 사고 시나리오에 대한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으며, 대전탈핵공동행동이 제기한 냉각 여력 부족이나 방사성 물질 누출 위험 증가 가능성은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특히, 플루토늄 재처리 가능성이 있는 고속로형 SMR 설계는 핵확산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어 단순한 기술 진보로만 볼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SMR의 경제성에 대한 논란 역시 핵심 쟁점이다. 모듈식 건설을 통한 비용 절감과 건설 기간 단축은 SMR의 주요 강점으로 내세워지지만, 해외 사례들은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 뉴스케일(NuScale) SMR 사업이 경제성 부족으로 중단되었다가 재개된 사례, 그리고 중국,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 실제 건설된 SMR들이 예상보다 훨씬 긴 건설 기간과 높은 비용을 초과한 사례는 SMR의 경제적 효용성이 여전히 불확실함을 보여준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SMR 건설 프로젝트 또한 21조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과 15년의 건설 기간이 예상되는 등,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주장이 현실에서는 녹록지 않음을 시사한다. 결국, 이러한 불확실한 비용은 최종적으로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핵폐기물 처리 문제이다. SMR 옹호론자들은 폐기물 발생량이 적다고 주장하지만, 비판론자들은 SMR이 소형이라는 특성상 연료를 더 자주 교체해야 하므로 단위 전력 생산량 대비 폐기물량이 오히려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반박한다. 또한, 모듈 일체형 구조의 SMR은 운전 종료 시 전체 모듈을 폐기물로 간주해야 하므로 총 폐기물량이 증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용후핵연료는 수십만 년간 안전하게 격리해야 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며, SMR 도입은 이 난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대전 유성 지역의 탈핵 단체가 SMR 특별법에 강력히 반발하는 배경에는 해당 지역의 특수성이 자리 잡고 있다. 대전은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핵 관련 시설이 밀집해 있고, 전국 원전에 공급되는 핵연료를 전량 생산하는 핵연료 전천후 기지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SMR 연구용 핵연료 가공 시설까지 들어서는 것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과거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사고 은폐 이력은 정부와 원자력 산업에 대한 주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형성했으며, 이러한 불신은 SMR 도입 논의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일방적인 핵 산업 확장은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이는 결국 갈등과 저항만 증폭시킬 뿐이다.

 

SMR 기술은 분명 에너지 안보와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거대한 과제 속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논의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논의 과정과 실증 사례들을 종합해볼 때, SMR 건립 정책이 일반 국민에게 무조건적으로 더 좋은 일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중대한 한계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SMR의 안전성에 대한 철저하고 투명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잠재적 위험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결과가 공개되고, 독립적인 전문가 집단의 평가를 거쳐야 한다.

 

둘째, 경제성 분석에 대한 객관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해외 사례를 통해 드러난 비용 증가와 건설 지연 문제를 직시하고, SMR이 기존 에너지원 대비 진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셋째, 핵폐기물 문제에 대한 명확하고 지속 가능한 해결 로드맵이 제시되어야 한다. SMR 도입을 논하기 전에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 문제에 대한 국가적 해법이 선행되어야만 국민적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하고 민주적인 공론화 과정이다. 일방적인 법안 발의나 추진보다는, SMR이 국민의 삶과 미래에 미칠 영향을 광범위하게 논의하고, 지역 주민들의 우려와 목소리를 경청하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만약 이러한 숙고와 과정 없이 SMR 도입이 강행된다면, 이는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닌 '미래 세대에게 전가될 짐'이 될 뿐이며, 대한민국 사회의 깊은 불신과 갈등의 씨앗이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