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은 향후 4년간 세종 교육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할 선장을 선출하는 유권자 축제의 날이다. 어떤 선장이 선택되느냐에 따라 세종시 교육의 깊이와 넓이가 결정된다. 이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 이해관계자이다. 이해관계자는 학생과 교사를 비롯한 학부모 및 교육 행정가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다. 이해관계자 중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은 학생이다. 학생을 제외한 모든 이해관계자는 학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자신의 꿈을 실현하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 내핵에는 교육감이 있다. 교육감 평가의 기준은 학생이 꿈을 실현하도록 도와주었는지가 되어야 한다. 혹여라도 그 꿈이 학생을 제외한 여타의 이해관계자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정책을 집행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한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대상에는 불성실한 태도로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도 포함된다. 누구나 직업에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책상에서만 하는 공부를 의미하지 않는다.
학생을 제외한 모두가 지난 11년간 세종 교육 이해관계자의 노력을 돌아보자. 실질적인 성과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조치원읍 지역의 쾌적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고 아름중학교 제2캠퍼스 설립으로 과밀 문제를 해소하는 등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문제로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문제적 현상 중 몇 가지는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에서부터 고교 진학을 앞둔 중3 학생이 세종시를 벗어나는 것 등이다. 그런가 하면 교육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상징하는 체육고등학교 하나 없는 현실은 형편없는 세종시 교육행정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명문대 진학률이 우상향 곡선을 보인다고는 하나 학부모의 불만은 잦아들지 않는다. 특히, 세종시뿐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 전체의 난제인 문해력 저하라는 문제까지 얽혀 있다. 세종시 교육의 현주소가 이런데도 누구 하나 책임질 만한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3번의 선거에서 세종 시민이 선택한 교육감이 집행한 교육행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선거가 갖는 중량감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이제는 ‘세종다운 교육’으로 체질을 바꿔 교육 수요자에게 다양성과 전문성을 설계할 경륜이 풍부한 세종다운 교육감이 절실한 것이다.
오늘날 강남이 대한민국 부의 상징이 되고 서울이 세계적인 대도시로 우뚝 솟은 이유를 다양성과 전문성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자. 답은 선명하다. 그 내핵에는 교육을 잘하는 고등학교가 있다. 강남 8학군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교육 경쟁력이라는 강력한 흡인력이 강남을 인구 블랙홀로 만들었다.
사람이 모이니 상권이 활기를 띠고, 상권이 팽창하면서 인프라도 구비되어 살기 좋은 지역이 되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그 근거에는 세칭 일류대학이 서울에 있고 그곳에서 대학 생활한 사람이 취직하고 결혼해 정주 후 자녀를 낳는다. 그 자녀의 고향은 자연스럽게 서울이 된다. 고향이 서울인 자녀는 그곳을 떠나 타향으로 이주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서울은 이미 만족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도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말은 제주로 보내고 아들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겠는가.
결국, 우수한 교육의 질이 도시와 국가의 지도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과거 수십 년의 살아있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 반대의 현상을 보자 젊은이가 학업을 위해 도회지로 떠나고 공부를 마친 뒤 농촌으로 돌아오지 않으니 연로하신 부모님만 남겨진 농촌은 공동화로 치닫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문제와 증상, 원인과 결과가 뒤엉킨 복잡계적 위기에 봉착해있다.
이는 마치 숲속의 나무뿌리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하나의 처방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권자가 지도자만을 바라보는 태도를 벗어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이제는 시민에게 주어진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여 헝클어진 교육행정 시스템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상기와 같은 논리로 접근하면 세종의 인구가 왜 수년 동안 39만의 정점에서 정체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학부모가 열망하는 교육의 요구를 충족하는 데 실패했다고 자인하는 것이 진솔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의 세종은 새로운 교육 체계를 설정할 새로운 기준을 작성하여야 한다.
학제가 6.3.3으로 외형적 시스템이라면 내용적 시스템 역시 재설계하여야 한다. 내용적 교육 시스템은 대학(大學)의 본말과 시종에서 찾을 수 있다. 본질은 인성을 밝히는데 있다. 시작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말(末)은 자신을 새롭게 하며 지식을 체계화하는데 있다. 그리고 그 끝은 쌓은 능력을 바탕으로 성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학문이다. 학문은 학제를 통해 체계적으로 구체화되며 달성된다.
교육이란 덕을 밝혀 시민을 새롭게 하고 선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선후가 바뀌면 인성을 상실한 황금만능주의 그리고 성과지상주의의 인물을 양산하는 교육이 된다. 가슴 아프게도 지금 우리 주변은 교육의 본말과 시종이 바뀐 채 방황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학교 교육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체계적으로 추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 길은 극도로 심화된 경쟁을 협력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교육의 선후와 기본 및 응용을 언급하는 것이 지극히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담론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반드시 실천하여야 할 교육의 명제이다. 우리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인성을 상실한 교육이 인간사회와 자연에 얼마나 깊은 생채기를 냈는지를 충분히 경험하였다.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될 사항이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향후 4년 교육의 깊이와 넓이를 결정하게 된다. 이제는 세종시 교육의 선장을 선택할 유권자의 시간이다. 2026년의 선택이 세종다운 교육을 위한 새로운 기준이 되고 나아가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표지석을 수립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 손병식 (경영학박사.한남대학교 미래대학원 시간강사)









